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성의 권리 옹호 (문단 편집) === 무지에서 이성으로, 사랑에서 우정으로 === > "남자들은 여성의 열등함을 지나치게 키워 온 나머지 이제 여성은 이성적인 존재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여성에게 능력을 계발하고 미덕을 쌓을 기회를 준 다음, 여성의 정신이 얼마나 열등한지 따져보게 하라." > ----- > - p.78 [[18세기]] 남성들의 논리는 여성을 대등하게 이성을 지닌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무지 몽매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었다. 먼 훗날의 비슷한 책인 《[[여성의 종속]]》 에서도 바뀌지 않은 점이라면, 이들 남성들은 단순히 기술적(descriptive)인 의미에서 '여성들은 그러하다' 라고 묘사한 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규정적(prescriptive)인 의미에서 '여성들은 그래야 한다' 고까지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여성들이 무지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로서 남는 것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남성은 유식하고 합리적이며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한 덕목이라면, 여성은 반대로 조금이라도 더 무지몽매하고 비합리적인 상태로서 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남성들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남성에게 한없이 의존하고, 아기자기하고, 교태를 부리며, 매사에 미숙한 모습을 보이고, 유순하고, 아무리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끝까지 인내하며, 수동적이고, 신체적으로 병약하며, 아는 것이 없어야 했다. 요컨대 '''[[백치미]] + [[헤타레]] + [[병약]] + [[요망]]'''(…) 속성을 지닌 여성들일수록 남성들에게 환영 받기 쉬웠다. 그들은 여성들이 이런 면모를 갈고 닦아서, 잘난 남성들의 마음을 홀려 결혼에 골인한 뒤 애 낳고 잘 기르는 것이 가장 큰 대의요 덕목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모든 여성들의 궁극적 삶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찬미를 진정한 애정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는 '''이성을 갖춘 드높은 존재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아니다.''' 저자는 이런 여성관이 기본적으로 "아이나 동물의 재롱을 볼 때 갖게 되는 느낌과 비슷하다"(p.64)고 말한다. 여성들의 유순함과 인내심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이 고귀하기는 하지만, 만일 그 유순함이 의존성과 나약함 때문에 나타난다면, 만일 그 인내심이 채찍을 맞아도 항의할 수 없는 무력감 때문에 나타난다면, 그런 유순함과 인내심은 덕목이 아니라 '''비참함을 가리는 가식에 불과하다.''' 즉,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참기만 하는 건 미덕이 아니다"(pp.76-77). 게다가 이런 여성들이 과연 자신의 남편을 제대로 내조하고, 자신의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있을까? 18세기 남성들은 아내가 순해야 집안 만사가 잘 돌아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저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남성에게 무조건 복종하고 자기 주장을 펼치지 않는 여성은 '''집안을 불행과 악행으로 물들인다'''는 것이다. 10장과 11장에서 저자가 강조하듯이, 이런 여성은 자녀를 [[권위주의]]적인 강압으로 키우거나 [[헬리콥터 부모]]가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권위주의 루트를 탄 어머니는 자녀에게 효도하라며 [[갑질]]을 일삼게 될 뿐이고, 헬리콥터 루트를 탄 어머니는 자녀를 눈치만 보는 나약한 사람으로 만들 뿐이다. 겸손함 내지 정숙함, 영어로는 'modesty' 에 대응되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개념은 "자기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고고한 의식과 결코 모순되지는 않지만 허영심이나 건방짐과는 거리가 먼 올바른 자기인식을 갖게 해 주는 소박한 성품과, 정숙함에서 나오는 순결한 정신"(p.211)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비하와 같은 '겸허함' 과도 다르고, 무지에 기초하는 '수줍음' 과도 다르며, 예의범절 및 격식에 기초하는 '얌전함' 과도 다르고, 신체적 성관계 여부에만 치중하는 '순결함' 과도 다르다. 오히려, 정숙함이라는 개념은 '''지금껏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요구되었을 뿐, 남녀 모두가 덕목으로 삼기에 적절한 좋은 가치'''인 것이다. 헌데 여성만 정숙해야 하는 이 사회는 여성이 정숙함을 추구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손해가 되도록 만들었다. 정숙하지 못한 남성들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성을 가꾸고 계몽되는 것에 무관심한 대다수 무지몽매한 여성들은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온갖 악행들을 저지른다. 잠시 이미지 하나를 떠올려 보자. 꽤나 여성스럽고 두껍게 화장을 해 놓고서, 그저 [[밍크]][[코트]]를 두른 채 [[백화점]] 직원들에게 마구 [[갑질]]을 일삼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저자 당시에도 이런 여성들이 굉장히 많았고, 본서에서 '''저자는 이런 여성들을 매우 [[극혐]]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성이 계발되지 않은 소위 '세련된 숙녀' 들은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기 위해 [[갑질|공연히 하인들을 괴롭히고 집에서 군림하며]] 자신의 허영심을 끝없이 채워 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이들의 지식은 상식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며, 감정은 비틀렸으며 까다롭고, 감성은 유치하면서도 예민하고, 스스로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줄 이성적 판단력은 결여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저자는 심지어 본서 4장에서 이런 여성들을 '''타락한 여성들'''이라고까지 말한다. 여성들은 왜 이런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은가? 저자에 따르면, 여성은 '''눈앞의 달콤한 쾌락에 매혹된 나머지 깨우치고자 하는 동기가 부족하다.''' 여성들이 이성을 추구하고 인격 도야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게 쏟아지는 온갖 찬미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찬미로부터 오는 쾌락은 심지어 여성들의 삶의 목표인 것처럼 교육되어 왔으니, 여성들은 그걸 포기할 이유가 없다. 그러하니 자연히 자기수양과 덕목의 계발 역시 요원해지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아름다움이라는 힘을 대대로 물려받아 온 여성은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 이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천부의 권리를 포기해 왔고, 평등에서 얻을 수 있는 건전한 기쁨을 획득하려고 애쓰기보다는 짧은 순간 [[여왕]] 대접을 받으려고 했던 것이다"(p.109). 이들은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는 덧없고 공허한 여왕 대접을 받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득을 챙기며 어떠한 덕목도 계발하지 않다가, 훗날 아름다움을 잃게 되면 경멸받게 된다. 저자는 이것이 '자기 노력으로 얻어낸 특별대우' 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들이 타락하는 메커니즘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런 달콤함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남성의 [[사랑]]'''이다. 여성들은 남성의 눈에 들고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온갖 교태와 아양과 애교와 요망함을 총동원하려 애를 쓴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진 남성의 사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질없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그 여성을 귀히 여기는 게 아니라, 단지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그리고 "들판에 핀 화사한 꽃들과 동일시"(p.107)하는 수준의 보호본능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변하지 않지만 외모는 시들게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진 '사랑' 의 불꽃은 오래가지 않아 사그라들고 만다. 그때부터 이제 아내의 불안이 시작된다. 내가 남편에게 내쳐지면 어떡하지, 남편이 나를 두고 다른 젊은 여자와 놀아나면 어쩌지, 남편이 성생활에 관심이 없어지면 어찌해야 하지, 이런 식의 두려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어차피 오래가지 못할 사랑에 너무 '올인' 한 결과로, 중년 여성들은 다른 여성을 경쟁자로 여겨 질투하거나, 자기 자신을 여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치장하기 위해 허영심을 부린다.''' 이 때문에 저자는 여성들에게 남성에게 사랑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 대신에 존중받을 생각을 하라고 말한다. 즉 저자가 이해하는 최상의 부부관계는, 덧없이 식어 없어질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한 애정과 상호존중에 기초한 [[우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다. 저자에 따르면, [[우정]]은 "부드러운 신뢰와 진실한 존경의 마음"(p.136)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성 없는 여성들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의 비현실적인 낭만 속에서 방황해서는 안 된다. 남편이 자신을 시혜적으로 돌보아 주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그 남편과 대등하게 서서 그가 자신에게 경탄하게 하며 하나의 탁월한 영혼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정도의 우정을 영위하려면 여성이 이성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밖에서 [[커리어우먼|직업여성]]으로 뛰든, 안에서 [[가정주부]]나 [[어머니]]로서 살아가든, 뭘 해도 정말 똑소리 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모범적으로 해낼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래서 저자는 여성들을 계몽시키기 위해서 교육의 힘을 강조한다. 본서의 저술동기 자체가 프랑스의 국민교육 법안에 여성들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 만큼, 본서 12장에서 저자는 '''어떠한 방식으로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상세한 밑그림을 그려 낸다. 저자는 기숙학교(공교육)와 가정교사(사교육) 제도 양쪽을 모두 비판하는데, 기숙학교에서는 사적인 가족애를 배울 수 없고, 가정교사는 공적인 인간애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양쪽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남녀공학]] 국영 교육기관'''을 설립하되, 연령별로 학생들을 분리시키고, 성별이나 빈부에 따라서는 구분하지 않고 모두 함께 섞으며, 모두 동일한 교칙을 적용함이 옳다고 말한다. 특히 저연령층은 아예 수업료를 면제하는 의무교육 시스템으로 운영해야 한다. 즉, [[샤를모리스 드 탈레랑페리고르|탈레랑]]의 국민교육 아이디어는 그런 면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거기에 [[여성]]이 빠졌을 뿐.''' 저자에 따르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하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도움이 된다.''' 여성들이 어리석고 사악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남성 또한 상대방과 진정한 인간애로 교감할 수 없으며, 단순히 [[섹스|성적인 접촉]]에 기초하는 야만적인 관계만을 영위하게 된다. 특히 계몽되고 이성적인 남성들은 자신의 배우자가 어리석을 경우 가정을 지키기가 훨씬 어렵게 되는데, 이는 아내들이 그들에게 재능과 영특함을 기대하는 이성적인 남편의 기대치를 충족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남녀공학]] 제도는 소년들에게 그들이 소녀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도덕적인지에 대한 많은 경험을 심어줄 수 있고, 이성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좋은 경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